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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The Korea Association of Literature for Children and Young Adults
아동청소년문학 연구의 풍요로운 터전을 일구어 나가겠습니다.
제목

권정생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카페에서 퍼온 글입니다)

작성자
문수연
작성일
2007.09.28
첨부파일0
조회수
1578
내용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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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권정생씨 별세

입력: 2007년 05월 17일 23:48:22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 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강아지똥’)
하찮고 쓸모없이 여겨지던 자신의 존재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동화 ‘강아지똥’의 작가 권정생씨가 17일 오후 2시17분쯤 대구가톨릭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20대부터 만성심부전증, 신장결핵으로 오랜 기간 투병해온 고인은 기구했지만 운명을, 사회를 탓하는 대신 평생 올곧고 소박한 마음으로 살다갔다. 아름다운 글로써 세상을 비춘 고인의 삶은 대가없이 민들레의 거름이 되기를 자처한 강아지똥과 다름없었다.
고인은 스무살 무렵 경북 안동 일직면 조탑리에 정착한 뒤 평생을 홀로 누옥에서 보내며 글을 써왔다. 1937년 일본 도쿄 혼마치 뒷골목에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나 해방후 조국으로 돌아온 고인이 조탑리에 정착하게 된 것은 지병인 결핵 때문이었다.
가난이 원수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객지를 떠돌며 나무와 고구마, 담배 등을 파는가하면 재봉틀상회 점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앓게 된 늑막염과 폐결핵이 신장결핵과 방광결핵으로 번져나갔다. 스무살 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병구완을 하다 64년 세상을 떴다. 혼기가 찬 여동생과 늙은 아버지에게 부담이 될까봐 집을 나온 뒤 유랑걸식을 하다 정착한 곳이 바로 조탑리다.
67년 병마와 싸우며 시골예배당 ‘종지기’로 문간방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고인의 문학인생은 시작됐다. 객지를 떠돌던 시절, 문학에 눈뜬 고인은 여름이면 비가 새고 겨울이면 생쥐가 발가락을 깨무는 작은 방에서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동화를 썼다. 비오는 여름날 처마 밑에 굴러다니는 강아지똥을 보고 쓴 ‘강아지똥’(1969)으로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식민지와 분단, 전쟁이 가져온 빈곤과 참혹함을 담담하게 그리고 앉은뱅이 아줌마, 매맞는 할미소, 미친 어머니 등 버려지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이 그의 펜을 통해 생명력을 얻었다.
고통 속에서 태어난 그의 동화는 한국 아동문학사에 당당히 한 획을 그었다. 각각 60여만부가 넘게 팔리며 아동문학 최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자리한 ‘강아지똥’, 전쟁후 가난과 소외, 폭력 앞에서도 꿋꿋했던 절름발이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몽실언니’(1984)가 그러하다. 고인은 ‘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오소리네집 꽃밭’ ‘점득이네’ 등 100여편의 동화를 발표했고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상(1969),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1975), 제22회 새싹문학상(1995)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우리 아동문학이 과연 어린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기에 이런 상을 주고받습니까”라며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96년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끝으로 글쓰기를 중단했다.
창비어린이 김이구 이사는 “고인은 전쟁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살아가는 몽실이와 같이 생명과 인간 존엄성을 옹호하는 작품을 써왔으며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내용의 동시 ‘바그다드 알리 하느님’을 발표하는 등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였다”고 회고했다.
빈소는 안동병원이며 발인은 20일 오전 9시. 장지는 생가가 있는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다. 유족은 없으며 장례는 6·15 민족문학인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공동 주관하는 민족문학인장으로 치러진다. (054)820-1679
〈경향신문  윤민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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